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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과 삶의 향기/문학 기행

미당 시문학관

by 골든모티브 2011. 5. 22.

미당시문학관 미당 시문학관

 

한국 최고의 서정시인, 문학의 교주, '소설에 동리' '시에 미당'

미당 서정주(1915~2000)는 20세기 대표시인으로 1000여편의 시를 발표했다.

우리말을 가장 능수능란하고 아름답게 구사해 한국어가 도달 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를 보여 주었다.

후배 시인들로부터 시의' 정부', '신화'로 불리운 그는 대표작이 가장 많은 시인이다

 

 소요산 자락의 미당 시문학관 안내도

 

 미당생가 앞 문학관 가는길 이정표- 고창군  부안면 질마재로

 

 미당시문학관 - 2001년 11월 개관

 문학관 정문 입구 - 소요산(444m) 자락 아래 폐교한 선운분교를 리모델링한 미당시문학관 중앙의 타워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문학관, 멀리 생가가 보인다

옥상 벽에 난 둥근 창과 네모난 창을 통해 미당의 생가와 미당의 묘소가 있는 안현마을

 

 문학관 전경 - 전시동과 세미나동

푸른 담쟁이가 벽을 타고

 

 문학관표지석

 미당 : 아직 덜 된 사람이라는 겸손한 마음과 영원히 소년이고자 하는 마음

 

 미당문학제 현수막

 

 미당 초상화

 

 미당 흉상

 

 생전의 집필 모습 - 친필시, 육필원고, 연구논문, 유품전시

 

문학관 마당 스테인리스로 만든 바람의 자전거 조형물 :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다

두바퀴는 8자를 표현하고 영원히 쉬지 않고 움직이는 바람의 역동성을 꿈꾸며 질마재 고개를 힘들게 넘어가듯 세상의 소중한 비밀을 알고자 힘써 노력하는 문학소년들의 꿈을 상징화함

 

선운사 입구 서정주시비 - 선운사 동구

 

선운사 골째기로/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안했고

막걸릿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작년 것만 상기도 남었습디다/그것도 목이 쉬어 남었습디다.

 

일제강점기에 썼던 친일시 ‘헌시-반도학도 특별지원병 제군에게’, ‘항공일에’와 서정주의‘친일 변명’이

함께 전시되어 있다. 한국을 대표하는 시인의 작품과 친일 행적을 모두 볼 수 있는 공간이다 

 

[서정주의 친일 변명] 종천순일파?  - 서정주
 

그러나 이 무렵의 나를
'친일파'라고 부르는 데에는 이의가 있다.

친하다는 것은
사타구니와 사타구니가 서로 친하듯 하는
뭐 그런 것도 있어야만 할 것인데
내게는 그런 것은 전혀 없었으니 말씀이다.

'부일파(附日派)'란 말도 있긴 하지만
거기에도 나는 해당되지 않는 걸로 안다.
일본에 바짝 다붙어 사는 걸로 이익을 노리자면
끈적끈적 잘 다붙는 무얼 가졌어야 했을 것인데
나는 내가 해준 일이 싼 월금을 받은 외에
그런 끈끈한 걸로 다붙어 보려고 한 일은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때 그저 다만
좀 구식의 표현을 하자면.---
'이것은 하늘이 이 겨레에게 주는 팔자다' 하는 것을
어떻게 해서라도 익히며 살아가려 했던 것이니
여기 적당한 말이려면
'종천친일파(從天親日派)' 같은 것이 괜찮을 듯하다.

이 때에 일본식으로 창씨개명까지 하지 않을 수 없었던
우리 다수 동포 속의 또 다수는
아마도 나와 의견이 같으실 듯하다.

『팔 할이 바람』자전적 담집에서

 

친일하게 된 연유에 대해

'일본이 그렇게 쉽게 항복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못 가도 몇 백 년은 갈 줄 알았다'는 미당의 고백 

 

2011년 5월 21일 선운사, 미당시문학관, 방장산, 고창읍성, 청보리밭, 고인돌유적지 탐방

김동기, 한서고 문학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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