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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과 삶의 향기/문학 산책

서촌 문학둘레길-윤동주시인의 언덕

by 골든모티브 2011. 10. 6.

서촌 문학둘레길

 

인사동-만해당(한용운가옥)-보안여관(시인부락)-이상옛집-세종대왕생가터-

윤동주하숙집터-송강정철집터 및 시비-윤동주시인의 언덕 및 윤동주 문학관

 

1. 만해당(한용운 가옥)

2. 보안여관(시인부락)

3. 이상옛집(가옥)

4. 윤동주하숙집터

5. 정철생가터

6. 윤동주시인의 언덕 및 윤동주 문학관

 

 

[자료제공 : 윤동주문학사상선양회, 종로구청]

 

조선시대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에 자리한 북촌이 사대부 집권 세력과 부호들의 거주지였다면,

서촌은 고관대작부터 중인, 아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신분 층이 함께 살아온 곳이다

 

1. 만해당 : 한용운가옥

만해 한용운(1879~1944)은 시인 겸 독립 운동가로 일제 때 시집 <님의 침묵>을 출판하여 저항문학에 앞장섰고, 불교를 개혁하고 불교의 현실참여를 주장하였다. 주요 저서로 「조선불교유신론」등이 있다.

만해당은 당시 한용운이 1918년 9월10일 청년계몽운동지 「유심」을 발간하고 1919년 3.1일 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서 독립선언서에 서명, 체포되어 3년형을 선고받기 직전인 1918년 4월부터 1919년 3.1운동까지 살던집이다. 현재는 한옥체험 게스트하우스로 운영되고 있다.

 

2. 보안여관 : 시인부락

일제감정기인 1936년 서울 종로 통의동 보안여관에 서정주, 김동리, 오장환, 김달진 등 동년배의 시인들과 문학동인지 '시인부락'을 만들었다. 뜻을 같이한 이들의 집필활동이 학자들은 한국 현대문학의 본격적인 등장이라고 평가한다. 젊음의 꿈과 희망, 현실에 대한 불만을 토론하던 보안여관은 광복 이후 지방에서 올라온 젊은 시인과 작가, 예술인들이 자리를 잡기 전 장기투숙하는 공간이었다. 현재 80여년동안 투숙객들의 '머뭄'과 '떠남'의 공간이던 <통의동 보안여관>은 이제 시간과 역사를 뛰어넘어 우리시대의 담론이 생산되고 새로운 문화예술이 투숙하는 복합 문화 공간으로 변모하고 있다.

 

3. 이상옛집

이상(1910~1937), 시인이며 소설가인 이상은 서울에서 태어나 본명은 김해경으로 1934년 구인회에 가입하여 문학 활동을 하였고 1936년 일본으로 건너갔지만 사상불온혐의로 구속 중 건강악화로 동경대학 부속병원에서 사망했다. 거울(1933) 오감도(1934)같은 형이상학적인 시를 통해 한국문학을 격상시켰으며 날개(1936) 종생기(1937) 동해(1937)등의 소설을 발표했다.

통인동 154-10번지는 이상이 3살 때부터 23살까지 살았던 백부 김연필의 집터 중 일부로 '문화유산국민신탁'과 '(재)아름지기'는 이곳에 새로운 형식의 기념관을 건립하여 이상이 운영했던 제비다방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다방, 작업실, 공연장 등으로 꾸밀 계획이다.

 

4. 윤동주하숙집터

윤동주(1917~1945)는 일제감정기에 짧게 살다간 청년 시인으로, 인간의 삶과 고뇌를 사색하고, 일제의 강압에 고통받는 조국의 시대적 현실을 투시하고 고민한 시인이었다. 그의 사상은 시 속에 투영되어 있다.

그는 21세가 되던 1938년 4월에 연희 전문학교에 재학시 1941년 인왕산 밑 누상동 9번지에서 일생 중 가장 왕성한 작품 활동을 했으며 이곳은 우리 민족을 사랑하는 시인으로서 가장 처절하게 번민하다 마침내 목숨까지 바치려는 「십자가」라는 사명시를 쓴 곳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누상동 시절은 한국문인 다수가 두려움에 떨며 변절하고 혹은 침묵하고 있을 때 가해자에 대한 저항정신을 아름다운 서정성과 탁월한 기법으로 써나가며 절정의 명시를 남긴 가장 소중한 창작 시절로 기억되야 할 것이다. 이 때 쓴 작품이「십자가」, 「새벽이 올 때까지」,「 태초의 아침」, 「못 자는 밤」, 「돌아오는 밤」, 「서시」등이다. 현재 당시 하숙집은 다세대 주택으로 변해 있다.

 

5. 정철생가터

송강 정철(1536~1593)은 서울 장의동(청운동)에서 4남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시인·정치가인 정철은 가사문학의 대가였다. 가사문학은 율문이면서도 서정, 서사, 교술의 다양한 성격을 지닌 문학장르, 산문과 율문의 중간적 형태로 조선조의 대표적인 문학 형식이라 할 수 있다.

명종 17년(1562) 별시문과에 장원급제하였고, 여러 관직을 두루 거쳐 선조 17년(1584)에 대사헌이 되었다. 1589년 우의정이 되어 서인의 대표로 동인을 추방하였으며, 다음해 좌의정에 올랐다. 1591년 광해군의 책봉을 건의하여 파직하였으나,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경기·충청·전라의 3도체찰사가 되었고, 1593년 중국 명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왔다. 정철은 정치가로서 큰 일을 많이 하였지만, 붕당 싸움에 말려 반대당의 배척을 받았다. 그러나 가사문학의 대가로 국문학에 크게 공헌하였다. 현재 청와대 근처의 청운초등학교 정문 앞 도로변에 '정철 선생 나신 곳' 표지석이 있고 그의 대표작 사미인곡 성산별곡과 관동별곡 등의 시비가 있다.

 

☞주변관광지 : 경복궁, 북촌8경, 인사동, 북악산, 환기미술관, 청와대, 창덕궁

 

 

서촌마을 문학지도  서촌문화산책지도.jpg

 

서촌문화산책지도.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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