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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의 향기/詩와 시인

이상 시인

by 골든모티브 2010. 4. 18.

이상의 마지막 행적

 

 

 

1937년 4월 17일 새벽 4시 일본 도쿄 제국대 부속병원에서 이상(李箱)이 27세로 세상을 떴다. 그는 1936년 10월 새로운 문학을 모색하러 도쿄에 갔다가 죽기 두 달 전 '거동 수상자'라는 이유로 일본 경찰에 체포됐다. 본명 김해경이 아닌 이름으로 '그리 온건하달 수 없는 글귀'를 적은 공책이 그의 하숙집에서 나왔다. 한 달 동안 조사를 받다가 추운 유치장에서 폐결핵이 악화돼 병원으로 옮겨졌다. 경성에서 급히 달려온 아내 변동림에게 그는 "멜론이 먹고 싶다"고 가느다란 목소리로 말한 뒤 숨을 거뒀다. 한때 '레몬'을 찾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멜론'이 맞다는 게 최근 연구 결과다.

올해는 이상(李箱) 탄생 100주년이다. 1910년 9월 23일 경성에서 태어난 이상은 '13인의 아해가 도로로 질주하오'라는 시 '오감도'를 내놓아 천재와 광인이라는 상반된 평가를 받았다. 이상과 절친했던 김기림은 "그는 스스로 제 혈관을 짜서 '시대의 혈서'를 쓴 것"이라며 "상(箱)이 소속한 20세기 악마의 종족들은 번영하는 위선의 문명을 향해 메마른 찬 웃음을 토할 뿐"이라고 옹호했다.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라고 묻는 소설 '날개'를 쓴 이상의 삶은 1960년대 이후 한국문학에서 시대를 앞선 천재의 상징으로 꼽혔다. '구속이 없는 자유, 자유로운 감각, 질서에 대한 충동의 우위, 상상력의 해방, 이런 것들이 오늘날까지도 이상 문학에 관심을 갖게 만든다'(권영민 서울대교수).

▶도쿄 시절 이상은 서양을 흉내낸 일본의 '모조(模造)된 현대'를 비웃었고, 하숙집에서 소설 '종생기' 등 10편을 왕성하게 썼다. 곧 귀국하려던 참에 느닷없이 니시간다(西神田) 경찰서에 끌려갔다. 이상은 병원에서 "예의 명문(名文)에 계원(係員)도 찬탄하더라"며 우스갯소리도 던졌지만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이상이 경찰서에서 쓴 수기(手記)를 포함한 일본 경찰 기록은 공개된 적이 없다. 지난 8일 일본인들로 구성된 '시인 윤동주 시비 건립위원회'가 옥사한 시인의 재판 기록을 찾아내기 위해 일본 검찰에 조사를 요청했다고 한다. 이상 탄생 100년을 맞아 우리 정부나 연구자들이 니시간다 경찰서에서 보낸 이상의 마지막 행적 자료도 일본 관계기관에 요청할 필요가 있다. 오늘 17일은 '박제가 된 천재' 이상이 떠난 날이다.

조선일보, 2010. 4.17.박해현. 이상사망일

 

이상 100주년 기념전시 제비다방전 교하아트센터

김유정, 박태원 등이 모여 치열하게 예술을 고민하던 장소

 <제비다방>을 모티브로 한 작품전 포스터 ⓒ교하아트센터

 

[시인들이 좋아하는 이상 애송시]
이상 : '거울' 4회, '꽃나무' 2, '오감도' 1, '절벽' 1, '가정' 2 (총10회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