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만에 완성한 박경리 대표작 `토지`
등장인물만 700여명민족의 고난 형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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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와 이 세상에 생을 받아 나온 모든 생명들의 삶의 부조리, 그것에 대응해 살아남는 모습, 존재의 본질적 추구를 같이 생각해 보자는 것입니다."(박경리, `토지` 머리말에서)
한국 대하소설의 뿌리로 평가받는 `토지`는 문학계의 최고봉으로 평가받는다. 일단 소설의 깊이만큼이나 완성되는 데 걸린 시간도 길었다. 또 병고와 싸운 작가의 집념도 녹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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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대표작 ‘토지’를 탈고하고 자연 속의 삶을 실천했던 집필실은 세월이 흐를수록 역사적 가치가 커져갈 것이다. 그러나 자택 일대가 택지로 개발되면서 박 씨는 원주 시내의 다른 곳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의 집필실은 그대로 남을 수 있었으나 주변은 예전의 모습이 아니다. 문학적 정취는 작가가 살았던 건물 하나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소설을 잉태한 공간 전체에서 나온다. 작가가 거닐었던 길, 살았던 동네가 문학의 산실이다. 어제 그가 타계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이 점이 다시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가 벌여온 환경운동은 그의 소설 ‘토지’와 일맥상통한다. 그는 평소 ‘모든 생명은 살아가기 위해 살아있는 걸 죽여야 한다. 그러므로 생명 자체는 한(恨)’이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한에서 비롯되는 자신에 대한 연민은 모든 생명에 대한 연민으로 확대되어야 한다’고 주문한다. ‘토지’에는 생명에 대한 연민과 사랑이 담겨 있다. 생각이 글 속에 머물지 않고 실제로 표출된 게 그의 환경운동이었다.
▷‘토지’는 200자 원고지 3만1000장이 넘는 엄청난 분량이었다. 조선조 말부터 1945년 광복의 순간까지 한국 사회의 긴 여정이 담겨 있다. 1955년 첫 단편 ‘계산’으로 시작된 그의 창작열은 마지막까지 식지 않았다. 그가 올 3월 발표한 시 ‘옛날의 그 집’은 원주 단구동 시절을 회상하고 있다. ‘모진 세월 가고/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한 인터뷰에서 “행복했으면 글을 쓰지 않았을 것”이라며 파란의 인생을 내비쳤던 그는 떠날 때만큼은 편한 마음이었던 것 같다.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 /2008.5.6
<칼럼>소설 ‘토지’ 에는 토지가 없다
땅은 있으되 농사는 없고 수많은 에피소드 토지와 무관 - 고 박경리 선생을 ´토지´ 작가로 한정해서 규정하는 것 부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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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가 박경리씨가 타계한 5일 빈소가 차려진 서울 송파구 아산병원 장례식장에 조문객들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연합뉴스 |
사실 조정래의 ‘태백산맥’이나 ‘한강’, ‘아리랑’은 정통 문학 작품이라고 할 수 없다. 황석영의 ‘장길산’ 김주영의 ‘객주’도 마찬가지다. 예컨대 긴 이야기, 많은 이야기인지라 영화가 아니라 드라마다. 소설 ´토지´는 대하소설의 촉발을 일으켰는데, 사건 나열적이고, 특정한 주제의식이 과잉 되게 현대사의 사건들과 맞물리는 방대한 양은 대중적인 주목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문학 작품성을 확보했다고 볼 수 없다.
단순히 잘 짜여진 멜로라인 뿐만 아니라 대중적인 작품에서 중요한 통속적인 구도도 잘 갖추고 있다. 최참판댁의 몰락과 살아남은 한 서린 최서희의 성장과 성공, 그리고 회심의 복수는 흥미로운 반전의 재미를 주기에 충분하다. 다만, 그 구조가 구한말의 동학과 의병, 간도협약, 일제 강점기 일본의 수탈, 간도 이주, 형평사, 해방이라는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과 잘 융화되어 있기 때문에 단순히 통속적이라고 할 수만은 없다.
이러한 점은 평론가들의 좋은 반응을 이끌어 내기도 쉽다. 리얼리즘의 틈바구니에서 그마나 살아남을수 있었다. 또한 서희를 통해 주체적인 여성 리더십을 잘 보여 주고 있다는 점에서 선구적일 수 있다. 이러한 점은 또한 비록 계급적 한계를 지니고 있는 서희라는 캐릭터이지만 길상을 통해 보완, 승화되는 매력을 가진다.
그러나 토지는 초반부에 이미 훌륭한 점이 다 드러날 뿐 중반을 넘어서고 많은 이들이 세대교체를 이루면서 훌륭한 장점들을 잃기 시작한다. 내용은 산만해지고, 흔히 이름을 얻은 작가가 그렇듯이 사상가의 반열에 오르려는 욕심이 드러난다. 즉 문학 자체 보다는 이념과 사상에 대한 작가적인 정리에 치중한다. 그러나 소설 ‘토지’는 애초에 잘 짜인 이야기 구조에 있으므로, 이러한 점은 대중적으로나 문학적으로 의미가 반감되었다.
소설 ‘토지’는 보통사람들의 생생한 이야기라고 볼 수가 없다. 대부분 최참판 댁 이야기를 중심으로 서사가 전개되기 때문이다. 나머지 사람들의 이야기는 소소한 재미를 주지만, 부차적이다. 더구나 작가적 상상력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수많은 이야깃거리다.
하나의 이야기 구조에 연연해 하지 않고, 여러 에피소드에 의존하는 방식은 이후의 역사 장편 소설에 원초를 제공했지만, 그것은 문학적 성취가 아니라 극적 형상화를 용이하게 했다. 수많은 이야기들이 다중적으로 전개되지만, 그것은 토지 그 자체가 아니라 인물들이다.
따라서 토지와는 별로 관계가 없다. 땅 혹은 토지로 생명과 삶을 유지하고 이어주어야 했던 사람들의 농밀한 일상사는 없다. 땅은 있되 땅은 없었고, 농민은 있되, 농민이 없었다. 땅은 있었지만, 농사는 없었고, 수많은 에피소드는 토지와 관계없이 존재할 수 있었다. 평사리가 아니어도 가능했으며, 다만 시대적 배경이 구한말에서 해방기의 산업화 이전시기 였기 때문에 ´토지´라는 이름이 가능했다.
왜 그럴까. 처음부터 땅의 경험에 기반하지 않은 지식인적인 관념적 추상적인 작품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 때문에 단순히 멜로 라인이나 최서희의 복수극이 더 흥미를 자아냈던 것이고, 그것 이외에는 모두 그것을 위한 장치에 불과해졌다. 등장 인물들의 한은 사회 역사적 소산이라기 보다는 개인적인 것들이었다.
예컨대, 최서희의 한과 복수는 최준구의 탐욕에 있었다. 용이나 월선 그리고 별당아씨와 구천, 서희와 길상의 사랑에 작용하는 신분 간의 차이가 더 도드라지고, 가슴에 와닿는 것은 사회역사적인 한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이를 제외하고 민중의 한들은 이마저 못하게 그려진 것은 바로 관념적 태생 때문이다.
사실 고 박경리 씨를 토지의 작가로 규정하는 것은 별로 타당하지 않다. 그는 수많은 작품을 통해서 다양한 주제의식과 문학적 성취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토지’가 없는 소설 ‘토지’는 특정한 과잉 가치의 강조로 결국 고 박경리 씨를 소설 ‘토지’에만 가두었고, 결국 초기의 훌륭한 ‘토지’의 결말을 용두사미로, 창작 시간과 방대한 양만 많게 했다.
박경리 씨의 토지가 한국문학의 최정점이라는 표현은 그러한 면에서 또 다르게 정확한 것인지 모른다. 이제 다시는 그러한 작품이 기념비적으로 기억되는 일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대하소설도, 거대담론이나 장강 같은 서사의 사회가 이제 아니기 때문이다. 스토리텔링의 시대라는 점이 ´토지´를 더욱 기억하게 할 것이다.
진중하고 화려한 수사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토지´에 등장하는 흥미로운 이야기 자체에 주목하면 더욱 의미가 있는 시점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면에서 한계점 외에도 소설 ‘토지’는 그 안에 안주해야 할 작품이 아니라 그것에서 벗어나야 할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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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의 거목 박경리, 토지로 돌아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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