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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과 삶의 향기/발표 작품

서호에 취하고 서당에 반하다

by 골든모티브 2010. 1. 8.

서호에 취하고 서당에 반하다

 

국어교육 2010년 1,2월호(91호)

 

“항주에 서호가 없었다면 항주를 갈 이유가 없다”

 

종플루의 위험이 도사리는 초여름 상하이(上海)를 거쳐 항저우(杭州)의 서호(西湖)와 서당(西塘)을 찾았다. 서호에 도착하자마자 갑자기 회오리바람이 일며 시커먼 먹구름이 태양을 집어 삼키더니 콩알만 한 우박비가 굉음을 내며 퍼붓는다. 한참동안 버스 차창을 향해 불나방이 가로등에 돌진하듯 은구슬 파편을 만들며 창문을 깨트릴 기세로 덤빈다. 순간 아름다운 호수 모습이 짙은 물안개 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서호의 미인 서시(西施)의 매력적인 모습을 쉽게 보여주기 싫어 하늘이 시샘을 하는 것일까? 아니면 서자호(西子湖)의 멋진 풍광을 보여주기 위해 북과 꽹과리를 치며 환영하듯 나를 반기는 것일까? 한바탕 내리던 우박비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잠잠해지고 먹구름 사이로 푸른 하늘이 빼곰히 얼굴을 내민다. 혹시 서호를 보지 못할까 하는 불안감과 긴장이 일시에 해소되며 얼어붙었던 마음도 서서히 봄 햇살에 눈 녹듯 풀어진다.

 

중국의 1위안 지폐 뒷면에 서호가 배경으로 그려져 있다는 현지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서호를 유람하며 하기 위해 배를 탔다. 유람선은 2층으로 이루어졌고 지붕은 황색의 기와를 올려 마치 집 한 채가 떠다니는 모습이다. 유람선에서 바라본 서호 주변의 모습은 절경 그대로였다. 버드나무와 정자, 누각과 사원, 탑 등이 주위의 자연과 어우러져 아름다움을 더하고 있다.

 

소동파(蘇東坡)의 적벽부(赤壁賦)가 생각나 한 수 읊어 본다.

“淸風徐來, 水波不興......, 白露橫江, 水光接天”

“맑은 바람은 서서히 불어오고 물결은 잔잔한데......,

흰 이슬은 강을 건너고 물빛은 하늘에 맞닿아 아득히 멀구나.”

 

서호의 분위기와 정말 기막히게 어울리는 시구 아닌가? 솔솔 부는 시원한 바람에 젖어 사람마다 흠뻑 취하고 나도 한잔 기울이니 흥이 절로 나며 소동파의 풍류를 내가 즐기는 것 같다. 맞은편에서 신혼부부처럼 보이는 연인이 작은 쪽배를 타고 바람과 물결에 몸을 의지한 채 유유히 노래를 부르며 뱃놀이를 즐기고 있다. 얼마나 부럽고 질투 나는 장면인가? 저 연인들은 서호를 다 품은 듯한 기분일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고 아름다운 연인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서호 11경이라 부르고 싶다.

 

멀리 보이는 성황각(城隍閣)을 뒤로 하고 소동파 시인의 낭만과 서민들의 애환이 스며있는 동파육(東坡肉) 요리를 맛보기로 한다. 서호를 관광한 후에는 꼭 항주 명물요리인 거지닭(叫花鷄)과 함께 동파육을 먹어야 한다는 의무감 때문이다. 우리의 삼겹살처럼 비계와 살덩이가 섞인 형태의 네모난 두터운 고기를 소홍주를 넣은 간장에 조린 것이라 생각하면 틀림없을 것이다. 아삭한 청경채에 싸서 먹는 맛은 입에 넣으면 바로 녹을 정도로 조금 부드럽고 껍질은 쫄깃쫄깃하지만 역시 우리의 고소한 삼겹살이나 육질이 부드럽고 쫀득쫀득한 족발에는 미치지 못한 것 같다. “돼지 비계의 맛을 알면 비로소 중국의 맛을 아는 것”이라 하지만 명성에 비해 조금은 실망스럽다.

 

아쉬운 마음에 호수의 바람을 맞으며 찻방에 앉아 짙은 향과 부드러운 맛이 일품이라는 용정차(龍井茶)를 찾아 음미하니 마치 날개가 돋아 신선이 되어 서호의 주인 행세를 하는 것 같구나.

“호의(縞衣) 현샹(玄裳)이 반공(半空)의 소소 뜨니,

셔호(西湖) 녯 주인을 반겨셔 넘노는 듯”

 

송강(松江)은 관동별곡(關東別曲)에서 옛날 송나라 때 서호처사(西湖處士)라고 불리던 임포(林逋)가 서호에서 매화와 학과 더불어 노닐었다는 고사를 인용하여 자신을 임포에 비유하고 있지만 서호의 참모습을 보지 못한 송강은 나와 비길 것이 못되는 것 같다. 낮보다 아름답다는 서호의 야경, 달빛에 저린 환상적인 풍광을 보지 못함이 못내 아쉽고 안타까웠지만 일정상 어찌할 수 없어 훗날을 기약하기로 하자.

 

 

살아 숨 쉬는 수향마을 서당에 반하다

 

서당은 천 년 전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해 지금까지 예전 모습의 전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쪽배를 타고 마을을 종횡으로 가로 지르며 수로를 따라 좌우로 아름다운 옛 고을의 풍경을 감상하면서 노를 젓고 있노라면 속세를 떠나 자연을 즐기는 어떤 어옹도 부럽지가 않는다.

한 폭의 수묵담채화 같은 수변마을 분위기가 내 마음을 한순간에 쏙 빼앗아 버린다. 집 앞 돌계단에서 빨래를 하는 아낙네들, 아름다운 풍경을 화폭에 담고 있는 화가들, 홍등과 창살문 드러난 즐비한 반점과 객잔의 가옥들, 예술품 같은 아치형 다리위에서 사진 찍기에 정신없는 관광객들, 선상의 카페 등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간다. 정말 평화롭고 낭만적인 수향의 모습이다. 이처럼 그림 같은 수로를 따라 세워진 이채로운 집들과 원시적인 건축물은 중국 역사문화의 천년고진임에 틀림없다.

 

관광객들이 가장 북적대는 곳으로 다가섰다. ‘가마우지’를 이용하여 낚시를 하는 중이다. 까만 잿빛의 목이 긴 오리처럼 생긴 가마우지가 목 아래 부분이 끈으로 묶여 있는 채로 쪽배위로 고기를 잡아오면 어부가 목에 걸려 있는 물고기를 꺼내고 있었다. 이것은 이기적이며 잔인한 낚시 방법이어서 중국 당국에서 금지했다고 하는데 이곳에서는 관광수입과 생계를 위해 아직도 행해지고 있다고 하니 씁쓸하기 짝이 없다.

 

잠시 여유를 가지며 차 한 잔 기울이고 있는데 여기저기서 호객행위가 벌어진다. 취두부(臭豆腐)를 먹어 보라고 자꾸 권해서 한 입 먹다가 코끝을 찌르는 격한 향을 내는 냄새 때문에 구토할 뻔 했다. 어찌나 역하고 썩은 냄새가 나는지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 이제껏 먹어보지 못한 독특한 음식인 것 같다. 지나가는 행인들이 웃으며 코를 싸쥐고 뛰어간다. 현지인들에게는 취두부가 한번 맛들이면 헤어날 수 없을 정도로 인기 있는 발효음식이며 그것을 즐겨 먹는다고 한다. 예전에 지인이 알싸하게 톡 쏘는 맛과 독특한 암모니아 냄새 때문에 삭인 홍어를 먹지 못하고 코를 막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버린 일이 생각나 빙그레 미소를 머금는다. 그 심정을 이제야 이해할 것 같다.

 

발길을 돌려 서당의 또 다른 매력인 수많은 골목길로 들어섰다. 중국의 옛 정취가 느껴지는 오래된 집들과 현지인들의 생활모습이 그대로 전해지는 끝없이 늘어선 골목길의 풍경이 다가온다. 카메라 렌즈를 어디에 둬야할 지 무엇부터 담아야 할 지 모를 정도로 볼거리가 많다. 좁은 길의 양쪽에 늘어서 있는 다양한 상점들이 올망졸망 줄지어 있고 앙증맞은 관광 상품과 다양한 만물상의 모습들을 대하니 꼭 동화나라에 들어온 기분이다.

 

마을 내부의 풍경은 꼭 우리의 70년대 시골 장터와 비슷한 모습이다. 반문명적이고 토속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그런 곳이다. 인정과 애환이 스며있는 현지 사람들의 소박한 삶의 흔적은 우리의 지친 마음을 편안하게 감싸 준다. 중국의 과거를 보려면 시안이나 허난을 찾고 현대를 보려면 상해를 권하고 싶다. 그러나 가족과 함께 차분하게 웰빙 여행을 하고 싶다면 영화 미션임파서블(Mission Impossible 3)과 드라마 카인(Cain)과 아벨(Abel)의 촬영지로도 유명한 서당의 독특한 분위기와 서정을 느껴야 할 것이다.

2009.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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