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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과 삶의 향기/발표 작품

윤동주 시인을 기리는 땅집

by 골든모티브 2010. 1. 7.

윤동주 시인을 기리는 땅집

-윤동주의 하늘과 땅과 별을 기리는 집-

 

  강서문단 3호(2009.12.30)

푸른솔문학 6호(2010.3.26)

 

동주 시인은 북간도 명동촌에서 태어나 일본으로 건너간 뒤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생을 마쳤다. 그의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국민 애송시가 되었으며 김소월과 함께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으로 뽑혔다. 그리고 그의 시편들은 우리시대 어두운 밤하늘을 밝히는 별이 되었다.

 

평소에 윤동주를 사랑하고 흠모했던 조병수 박사(건축가)가 그의 문학과 삶을 기리고자 후쿠오카 형무소에서의 생활을 형상화하여 ‘땅집’을 건축했다. 땅 집은 경기도 양평군 지평면 수곡리의 산자락 ‘꿈이 있는 교회’ 옆에 자리 잡고 있다. 이정표도 없는 길을 따라 산비탈을 올라가면 언덕 위에 땅속으로 들어간 작은 집이 내려다보이며 그 위로 비슷한 형태의 또 다른 사각형 별장이 있다.

 

지붕은 보이지 않고 네모난 콘크리트 상자 같은 것이 발아래 놓여 있다. 가로 세로 7M의 마당과 6평의 방이 전부이며 지붕은 지표와 맞닿아 있다. 마당 한 모퉁이에 우물을 설계했는데 여의치 않아 나중을 기약했다고 한다. 그 우물을 통하여 “우물 속에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부는 것”을 가만히 들여다 볼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움이 남는다. 방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좁은 계단을 타고 내려가 마당을 가로 질러 토방을 거쳐야 한다. 낮고 좁은 방문을 열자 벌집 같은 모양이 눈에 들어온다. 겨우 1평씩 6개의 공간으로 이루어진 아담한 네모난 방은 흙벽과 나무로만 되어 있다. 여느 집에서나 볼 수 있는 화려한 인테리어나 가구는 볼 수 없고 그저 담백하고 순수한 공간만 보일 뿐이다. 네모는 단순하면서도 모든 것을 다 품을 수 있는 공간이며 땅집은 네모에서 시작한다고 조병수 박사는 설명한다. 바닥은 흙으로 잘 다져진 상태로 장판도 깔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다. 아직도 흙냄새가 은은하게 풍기며 시골 토담집을 연상하게 한다. 맨발로 흙을 밟고 흙을 만지며 흙과 함께 사는 모습, 말 그대로 흙집인 셈이다. 1평의 방은 고요하고 따뜻하다. 뒤쪽으로 조그마한 창문을 통해 약간의 빛이 스며들고 있다. 윤동주는 감옥에서 나갈 수가 없었지만 이 방은 순사가 찾아오면 창문을 통해 빠져 나갈 수 있게 설계했다고 귀띔해 준다.

 

이곳에서 하룻밤 묵으며 밤새 윤동주의 시집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차갑고 고통스러운 이국땅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온갖 고문을 당하면서도 시련을 견디어 내며 일제에 저항한 민족시인 윤동주 시인을 생각하니 피가 거꾸로 솟는다. 쇠사슬에 묶인 채로 어둡고 피비린내 나는 좁은 독방 감옥에서 생체실험을 당했다는 의혹을 남긴 채 끝내 조국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영영 이별을 하였다. 잠시 울컥하던 마음을 달래며 방을 나와 토방마루에 앉아 명상에 잠긴다.

 

아직도 땅속이라 정면은 3M 높이의 콘크리트 담장만이 나를 응시하고 있다. 담장 곳곳에는 소나무를 잘라 만든 둥근 나무 기둥이 박혀 있다. 세월이 흘러 저 기둥이 썩으면서 풀이 자라나면 콘크리트 담장은 친구가 생길 것이다. 인공적으로 화단을 따로 만들지 않고 자연 그대로의 상태에서 야생화를 키우겠다는 기발한 발상에 또 한 번 놀란다.

고개를 드니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직사각형 모양의 ‘하늘집’ 뿐이다. 먹구름이 잔뜩 끼어 있는 하늘은 바람에 실려 영화관의 스크린 화면이 바뀌듯이 변화무쌍한 모양을 만들어 낸다. 네모난 스크린을 통해 자연이 그대로 노출되고 있다.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나와 자연만이 서로 응시하며 이야기를 하는 것 아닌가. 토방 마루에 앉아 한정된 시야를 통해 자연을 그렇게 받아들이고 느낄 뿐이다. 위에서 보면 땅 아래에 있지만 이렇게 아래에서 보면 하늘만 보이기 때문에 ‘하늘집’이라고도 한다. 이곳에서 밤을 지새우며 하늘에 박혀있는 별들과 이야기 하고 싶다. 큰별, 작은별, 무리별과 친구가 되어 창가에 내려오면 하늘의 세계를 듣고 땅의 세계를 전해주고 싶다. 윤동주는 ‘별 헤는 밤’에서 이렇게 별을 노래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憧憬)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타향에서 어머니와 고향의 모든 것을 그리워하며 별을 하나씩 세며 노래했지만 결국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어두운 밤하늘에 별이 되어 총총히 떠돌고 있다.

 

김춘수 시의 ‘꽃’에서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비로소 꽃이 되었듯이 나도 땅집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땅집은 윤동주의 영혼이 서려 있는 집이며 자연 친화적인 조병수의 시적인 건축물이다. “절박했던 시대에 윤동주의 시가 항상 미래를 향하여 희망적인 것처럼 땅 집은 또 이 시대의 삶을 성찰하고 돌이켜 볼 수 있는 집이 되었으면 한다.”

 

강서문협 회원과 조병수연구소 팀원과의 시와 산문 낭송회를 마치고 별장으로 이동하여 준비된 만찬을 즐겼다. 와인과 곁들인 스테이크는 정말 최고의 맛이었다. 조병수 박사의 건축 이야기로 시간 간 줄 모르고 있었다. 이외수 소설가의 화천 집과 집필실을 설계했고 내년쯤에는 작품전시 공간도 완성한다고 한다. 이집은 대학 때부터 구상한 것을 이제야 자신의 스타일로 구현했다고 한다. 네모난 형태의 집은 가운데 연못이 있고 지붕은 하늘로 뻥 뚫려 있다. 밖에서 맞았던 빗방울이 연못으로 떨어진다. 깊은 산속 계곡에 앉아서 비를 맞는 그런 기분이다. 형광 불빛에 반사되어 시원하게 내리는 빗방울을 보니 정말 장관이었다. 이런 광경을 방안에서 자연스럽게 볼 수 있는 구조로 설계되어 있다니 놀라움과 함께 또 한 번 조병수 박사의 건축미를 엿볼 수가 있었다. 비슷한 구조로 되어 있는 김유정 생가에서 소낙비를 맞아본 경험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 들었다.

/ 2009. 12. 10. 경기도 양평 윤동주 땅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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