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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과 삶의 향기/발표 작품

윤동주의 고향 명동촌의 하늘을 보며

by 골든모티브 2011. 10. 6.

별에게 길을 묻다

윤동주의 고향 명동촌의 하늘을 보며

 

 

함께여는 국어교육 (2011 통권102호)

김동기

 

 

명동촌의 하늘은 참으로 곱고 주변 경치는 한국의 여느 농촌의 풍경과도 다르지 않다. 노랗게 물든 콩밭과 가을햇살에 고개 숙인 해바라기와 산들거리는 바람에 나풀나풀 춤을 추는 코스모스가 그렇다.

윤동주 생가입구에 들어서자 오른쪽으로 윤동주가 다녔던 명동교회가 허름하게 서있고 장대처럼 높이 솟아있는 가느다란 십자가가 바람에 흔들리며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다. “쫓아오던 햇볕인데 / 지금 교회당 꼭대기 / 십자가에 걸리였습니다 / 첨탑이 저렇게도 높은데 /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십자가) 화자가 추구하는 삶의 목표가 도달하기 어렵다는 것은 차치하고라도 지금 보니 높아서가 아니라 가늘고 긴 십자가여서 올라갈 수가 없었던 것이다. 현재는 명동역사전시관으로 저항시인 윤동주와 반일 민족 독립운동의 선구자 규암 김약연선생의 자료 전시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자료들은 빛바랜 흑백사진 사본을 전시해 놓아 볼품도 없고 사료로서 가치가 없는 것 같아 실망감을 감출 수가 없다. 윤동주 문학관은 언제쯤에 제대로 된 모습을 갖출 수가 있을까?

 

교회 아래로는 생가가 자리하고 있는데 윤동주고향집이라는 나무 팻말 뒤로 고즈넉한 기와집 한 채가 외롭게 가을 뙤약볕을 견디고 있었다. 잠시 고개를 숙이며 때늦은 조문이나마 내려놓는다. 이곳은 1900년경에 조부 윤하현 선생이 지은 집으로 곳간이 달린 조선족 전통구조로 된 가옥이다. 1981년에 허물어졌던 집을 1994년에 역사적 유물로서의 가치와 관광차원에서 다시 복원하였다고 한다.

마당 앞쪽에는 넓은 들판이 시원스럽게 펼쳐져 있다. 윤동주가 유년기에 쓰던 방과 방학 때 귀향하여 시를 쓰던 방이 그대로 재현되어 그의 체취와 혼이 서려 있는 듯하다. 울타리도 없는 생가 흙 마당에는 풀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어 다시 한 번 윤동주의 시편이 떠오른다. “내 이름자 묻힌 언덕위에도 /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거외다.”(별 헤는 밤) 초라한 무덤도 아닌 생가 마당이 잡초로 우겨져 전혀 관리가 안 되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하기 짝이 없다.

왼쪽 별채 측면 벽에는 최초의 명동 소학교라고 쓰인 칠판이 걸려 있다. 3학년 1반 청소당번 문익환, 지각생 윤동주, 떠드는 학생 송몽규가 나란히 적혀 있어 이들이 소학교 시절 급우였음을 알려 준다. 숨바꼭질 하던 이들이 뒤안 어디에선가 불쑥 뛰어나올 것만 같다. 이들 중 고종 사촌인 송몽규는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윤동주와 며칠 사이를 두고 옥사하였으며 고향에 나란히 묘비가 세웠졌다. 평생을 함께 한 영원한 죽마고우(竹馬故友)인 것이다. 쓸쓸함과 허전함이 묻어나는 빈집은 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듯 고요하기만 하다.

 

오른쪽 뒤안길로 덩그렇게 박힌 우물을 찾았다. 원래는 사각형의 나무 목판이었다는데 허물어져 다시 복원하는 과정에서 돌과 시멘트 구조물로 바뀌어 옛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 우물 속을 응시하며 두레박을 던져 시원한 물 한 모금 마셨으면 하는데 덮개가 닫혀 있어 속을 들여다 볼 수도 없다.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 우물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자화상)의 시구처럼 명동촌의 가을하늘과 바람과 구름을 우물 속을 통해 그려보고 싶었는데 아쉬운 순간이다. 다만 우물 주위로 코스모스가 만발하여 형형색색 오색기를 흔들고 하늘하늘 춤을 추며 방문객을 반기는 듯한 모습에 위안을 삼을 뿐이다. “옛 소녀가 못견디게 그리워 / 코스모스 핀 정원으로 찾아간다 /(……)내 마음은 코스모스의 마음이요 / 코스모스의 마음은 내 마음이다.”(코스모스)

 

고향집은 윤동주가 19171230일 태어나서 1932년 용정은진중학교에 입학하여 용정으로 이사하기 전까지 성장했던 곳이다. 그는 유년기와 소년기를 바로 이곳에서 지냈으며 지금은 교외의 동산 언덕에 묻혀 고이 잠들고 있다. 윤동주가 노래한 하늘과 바람과 별의 배경이 바로 명동촌의 자연이며 그의 시심과 사상이 우러나온 곳이다.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봅니다 / 소학교때 책상을 같이 했던 이이들의 이름과 (……), 벌써 애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별 헤는 밤)을 떠올린다.

 

윤동주는 이 마당 양지마른 곳에서 티 없이 맑고 순수한 코흘리개 동무들과 둘러앉아 소꿉장난을 하였을 것이고, 헌 짚신짝을 끌며 골목을 싸돌아다니며 신나게 뛰어놀았을 것이다. 그가 어릴 적에 쓴 습작들은 문학사에 찬연히 빛나는 시가 되었고 그의 청년 시절의 시는 곧 그의 영원한 인생이 되었다. 단 한 여자도 사랑해 본 일이 없다던 그가 이제 거꾸로 모든 이들의 사랑을 받게 된 일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일제 강점기에 짧은 생을 마감했던 명동촌의 청년 윤동주는 이제 보석처럼 빛나는 불멸의 시인으로 한국문학사에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 김동기, 한서고 국어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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